오늘도 여느 주말처럼 하릴없이 타 사이트들을 탐방하면서 시간을 때우던 어느날
루리웹의 어떤 유저가 "이순신은 전쟁 중에 여러 여자들과 잭스를 즐긴 호색한이였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게된다
(글 정리하고 있던 지금 와서 다시보니 해당 댓글은 삭제된 상태임)
헌데 내용이 흥미로운 것과 별개로 과연 이 주장이 사실일까?
그래서 시간이 남아도는 방구석 사이비 역사학도 펨붕이가 팩트체크를 해보았다
※편의상 '1번과 2번' 그리고 '3번과 4번'은 묶어서, 5번은 따로 분류해서 팩트체크함
1,2번) 이순신 장군은 정말 전쟁 중에 전라도에서 첩을 만들고 미친듯이 잭스에 몰두했나?
먼저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여종들의 이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여진(女眞)', '개(介)', '덕금(德今)', '한대(漢代)', '효대(孝代)', '은진(恩津)'
그리고 이 여종들의 이름을 토대로 인터넷에서 검색한 결과...
여진(女眞)이라는 여종을 두번-세번 따먹어서 울려버리질 않나, 한번에 포썸을 넘어 파이브썸(...)까지 하는 엄청난 기행을 보여주신다...
(왼쪽부터 1596년 9월 14일&15일/ 1596년 3월 9일/ 1596년 3월 5일 기사)
자, 인터넷에서 구한 저 내용들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난중일기 원문을 보도록 하자
문제가 되는 내용들의 훈음과 직역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596년 9월 14일&15일>
여진입(女眞卄)=여진(女眞)이라는 여종과 '20번(卄)을 했다'
여진삽(女眞卅)=여진(女眞)이라는 여종과 '30번(卅)을 했다'
<1596년 3월 9일>
개여지공(介與之共)=개(介)라는 여종과 '함께 했다(共)'
<1596년 3월 6일>
덕금한대효대은진비지(女奴德今漢代孝代恩津婢至)=계집종 덕금, 한대, 효대, 은진과 함께 '이르렀다(至)'
그렇다... 저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충무공께선 무려 50번이나 여진이랑 잭스를 했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단 이틀동안 연달아서...
여진이라는 여종은 정녕 혜정이를 뛰어넘는 요물이라는 것인가...?
(출처: 난중일기 완역본-노승석 번역)
당연하지만 이는 말도 안되는 해석이다
여기서 '스물 입(卄)'과 '서른 삽(卅)'은 '함께할 공(共)'의 오독으로,
1935년 조선총독부 산하의 <조선사 편수회>라는 기관에서 난중일기를 번역하다가 실수(?)를 한 것이다
이렇게 오독된 이유는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기록할때 한자를 초서체로, 쉽게 말해서 필기체로 날려 썼기(...) 때문이다
저기 있는 파란 글자가 '함께할 공(共)'자인데, 언뜻보면 '스물 입(卄)'이나 '서른 삽(卅)'과 비슷해 보이지만, 난중일기의 다른 부분(세번째 짤)을 보면 '공(共)'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아니 잠깐만... 잭스를 두번하든 세번하든 아니면 50번을 하든간에 그건 오독이라고 쳐도,
결국 여종과 함께 했다(共)는 것 자체는 팩트 아님?"
만약 '함께할 공(共)'을 그렇고 그런 의미로 해석해버린다면,
충무공께선 녹도만호 정운과도 한판 하고 경상수사 원균(!)과도 사랑을 나눈 개씹게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걸 말이 되게 해석해보자면 '여진'과 '개'라는 여종은
어디까지나 서양의 메이드처럼 이순신 장군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여기서 '이르다 지(至)'는 보통 '~(장소에) 도달하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에,
그냥 "(밤늦게) 계집종 덕금, 한대, 효대, 은진이 집에 돌아왔다"라는 내용이 될 뿐이다
1&2번 주장에 대한 결론)
= 그냥 단순 오역에서 온 해프닝이다
3, 4번) 이순신은 정말 비리 공무원과 밤새 술을 마시고 그의 딸과 잭스를 나누었나?
이젠 인터넷에 있는 번역본은 믿을 수 없어서 전문가(노승석-여해고전연구소장)가 직접 번역한 E북을 구입해 참고했다
일단 1596년 9월 19일자 내용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는데,
"광주 목사랑 한창 술 마시고 취해있는, 때마침 조정에서 파견한 채찰사 이계령이 와서 광주 목사를 파면해버렸고, 그 딸인 귀지가 충무공의 집에 와서 잤다"
언뜻보면 사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해당 광주 목사가 누구냐'는 것이다
해당 광주 목사는 바로 '최철견'이라는 인물로 임진왜란 초기(1592년)에 명나라 장수 낙상지와 함께 전주 시민들을 목숨 걸고 지킨 장군인데,
그 깐깐하다는 권율마저 '최철견은 임진왜란의 일등공신이다'라고 칭찬할만큼 활약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무슨 이유로 봉고파직을 당했는진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추후 임진왜란이 종결된 이후에는 사간원 정언(정 6품)에 오를만큼 승승장구 하게 된다
그가 정말 비리 공무원이였다면 굳이 선조에게 저렇게까지 중용 받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최철견의 딸(최귀지)이 와서 잤다(崔女貴之來宿)'는 구절도 마찬가지
여기서 '숙(宿)'은 '숙박하다', '숙영하다'는 의미로,
아버지가 한순간에 체포되는 바람에 의지할 곳을 잃은 최귀지를 위해 하룻밤 방을 빌려줬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올바르지
'와서 잤다=(애비 잃은)그 딸과 잭스했다'로 해석하면 매우 곤란하다
3&4번 주장에 대한 결론)
= 이것 역시 마찬가지. 단순 오역에서 온 해프닝이다
5번) 이순신은 정말 서울에서 내려온 기녀와 밤새 술을 마시고 잭스를 하였나?
이제 슬슬 글이 길어져서 지루할테니
이 부분은 한번에 반박하고자 한다
서울에서 기녀(내산월)가 내려왔는가? => Yes
술을 마셨는가? => Yes
취해서 색스했나 => No
(酒談向夜而罷=술을 마시다가 밤이 늦어 헤어졌다, 진짜 만취했으면 앞서 광주 목사의 내용처럼 취할 취(醉)자가 있어야함)
<마치며>
이것으로 어떤 유저가 주장한 "이순신은 잭스에 중독된 난봉꾼이다"라는 내용의 팩트체크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끝으로 이순신 장군과 동시대에 살았던 '이항복'의 '고통제사이공유사(故統制使李公遺事)'에 있는 구절을 인용해본다
"이순신은 군영에 있었던 7년 동안 몸과 마음이 곤고해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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