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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먼 옛날, 고대한반도의 자연은어떠했을까

등록일 2024-06-15 18:19:31 | 코멘트 0건 | 조회수 3,009회


 오늘날 한반도의 숲과 들하면 떠오르는 느낌은 대략


1. 아담한 동네뒷산과 소나무숲,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고라니,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들






2. 시골의 경우 마을 사이로 넓게 펼쳐져 있는 평화로운 논과 밭




과 같은 이미지들을 떠올린다. 

그런데 고대로 거슬로 올라가 1000년전, 혹은 더 나아가 1500년전의 한반도도 과연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모습과 같았을까?

카메라가 나오기 전인 한참 먼 옛날의 한반도의 모습을 자세히 알수는 없겠지만,

남아있는 기록들을 토대로 그 지금과는 어떻게 달랐는지 유추해보도록하자.

과거 삼국과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한반도의 산림과 습지는 다양한 종류의 야생동물군이 분포해 있었다.

신라시대에 쓰여진 "민정문서"에 따르면,


(통일신라시기 현재의 청주지역인 서원경 지역 4개마을의 정보를 기록한 문서. 현재 일본 동대사에서 보관중이다.)

마을 전체에서 경작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4.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당시 신라에서 가장 컸던 지방 도시들 중 하나인 서원경(지금의 청주지역)의 상황을 기록해둔 것이었는데,

현재로 따지자면, 광역시중 하나인 울산의 인구, 경제 상황, 각정 행정사항들을 기록해논것으로 비유할수 있겠다.

지방 대도시라는 곳의 경작지 상황이 이러했다는 뜻은

동시대 한반도 전체를 놓고 생각해본다면,

평균적인 농경지 비율은 4%도 되지 않았을거라는 결론에 도달할수 있다. 


(모노노케 히메에 영감을 준 된 일본 야쿠시마 숲)

즉, 그 당시 한반도의 땅은 드문드문 있었던 마을들 사이사이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거대한 원시림, 야생의 땅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러한 원시림에는 수종이 몇백년이 넘는 나무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고려에 들어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고려와 무역과 교류가 활발했던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이란 책엔 이러한 묘사가 있다.


"대부분 고려의 촌락들은 주로 큰 산의 산자락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거주민들은 마을 옆 산비탈을 따라 나무를 베어 논 만들었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야생의 땅이다


즉, 고려때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산의 끝자락마다 조그마한 마을이 있었고,

산끝자락 평지와 만나던 곳에 살던 마을 사람들은

산비탈을 경작하여 논으로 쓰고 있었고,

여전히 드넓은 영역의 평지는 개발되지 않은 채, 야생동물들이 활보하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아마 이런식으로 산자락 끝에 마을이 위치해 있고,

산의 경사를 따라 계단식 논이 이루어져있을거라 추측할수 있다.

우리가 지금 흔히 보는 지평선과 마주닿는 광활한 평야의 논은 그 때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평택평야, 김포평야, 김제평야, 호남평야 같은 드넓은 땅들은


그저 흐르는 하천과 무성한 수풀 사이의 짐승들과 도적떼들만이 존재했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땅이었던 것이다.


(김제평야. 지금 민가와 논으로 빽빽한 이곳은 1000년전 사람이 발길이 닿지 않은 무주지였을 것이다.)



(평야에 위치한 야생갈대밭)

또한 대한민국 국보7호이자 고려 현종 1026년에 세워진 봉선홍경사 갈기비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국보 7호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처음 이 땅에는 전혀 객주집이 없어서 사람의 땅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다가 갈대가 우거진 늪이 있어 강도떼들도 상당히 많았다..."


광활한 평야에는 야생짐승들 뿐만 아니라, 여행객의 목숨을 노리는 강도떼들도 무성했던 모양이다.

오늘날 논과 민가로 가득채워진 시골을 떠올리면, 그저 야생 그대로의 모습이 아닐수 없다.

그렇다면 마을사람들은 산과 들에 사는 야생동물로부터 어떻게 마을을 보호했을까?


이러한 흉폭한 자연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있었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마을 주위를 커다란 목책으로 둘러 보호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커다란 나무들을 둘러 쉴드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대범한 호랑이들이 인간이 만든 거대한 울타리를 넘어 

민가에 피해를 끼치는 일이 자주 있었던 것 같다.

17세기 조선 인조 당시의 기록엔

"의주에 범이 성벽을 넘어 사람들과 가축을 해하였다." 란 기록이 있고

심지어 조선 태종때 기록엔

"범이 성을 넘어와 근정전 뜰에까지 들어왔다." 란 구절도 있다.

이처럼 맹수가 없는 현재의 생태계와는 달리

한반도에는 호랑이를 비롯한 표범, 늑대들이 가득 넘쳐났었다.



범이 마을을 습격해 사람들이나 가축을 물어가거나 해치는 일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몇백년 된 고목들과 맹수들이 우글거리던 한반도의 숲과 들은 대체 어떤 이유로 전부 사라져버렸을까?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생긴 화전민들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유럽의 화전민)

인구 증가와 더불어 농경지가 차차 부족해지자,

가난했던 조선이 농민들은 논과 밭을 확보하고자 산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그런데 수백년된 나무들이 즐비한 원시림이 사람이 베어낸다고 하여 쉽게 없어질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이들이 생각해낸 것은, 바로 불을 질러 아주 빠른시간안에 숲을 싸그리 다 태워버리는 것.



이들은 불을 놓아 숲을 제거하고, 그 위에 농사를 짓다가 

지력이 다하면 주변의 다른 숲으로 옮겨가 다시 불을 지르고 농사를 시작했다.

이것이 반복될수록 자연스레 한반도의 고대 원시림들은 점점 파괴되어 사라져갔고, 

그에 따라 보금자리르 잃은 야생동물들도 사냥을 당하면서 점점 자취를 감췄다.

 
(17세기의 소빙하기. 100만명내외의 아사자를 낸 경신대기근도 소빙하기의 영향이라는 연구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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